소쿠로프에 대한 노트: 죽음 또는 죽음의 장면들
                                                           소쿠로프 :러시아 아치

1. 지난 해 시네마 테크에서 알렉산드로 소트로프의 "태양" 시사회에서는 마음이 꽤나 불편했다. 무대에 직접 오른 소쿠로프 본인의 인사말도 그러했고, 영화의 흐름도 마음을 거북하게 하는데가 있어서, 나는 더이상 그의 영화를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내게 소쿠로프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내걸고 주요한 역사적, 정치적 판단들을 회피하는 작가로 보였다. 게다가 그가 역사를 회피하는 방식은 적극적이고, 고개를 돌려 역사에 대해 발언할 때 그 내용은 반동적인 데가 있다는 혐의를 들었더랬다.

그런데 이후 그의 전작 "러시아식 아치"를 보게되었고 나는  그에 대한 인상을 조금 고쳐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대단히 고집센 작가이고, 그의 미학적 입장은  고집스러울만큼 개인적이고 꿋꿋하더라는거다. 영화 "러시아 아치"는 러시아 생트페터부르크 뮤지움 회랑을 따라 가며 플랑 세컨스 ( 영화 전편이 하나의 세컹스로 찍혔다. ) 로 미술관에 기입된 시간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작품은 그 (고집스러운) 미학적인 성취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미술관의 각 방들은 그 곳에 걸려있는 작품들마냥 각각 다른 시대를 나타낸다. 이 방들을 드나들며,  카메라는 마치 서로 다른 시대를 유영하듯 흘러가고 소쿠로프는 화면 밖에서 아이러닉한 어조로 시종 나레이션을 맡는다.

관객의 발걸음/시선은 회랑을 따라, 이 방 저 방을 드나드는 19세기의 프랑스 외교관의 뒤를 쫓는다. 화면 밖에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소쿠로프는 이 영화 속 인물-이중적으로 허구적인 인물, 다른 시대의 인물이자 픽션 속의 인물-과 눈길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눈다. 이 곳, 이 장소에 비탄에 잠긴 러시아의 역사가, 너무나 화려한 역사가 잠들어 있다. 바로  이 헤르미타쥬 박물관에.

소쿠로프의 영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몽환적인 여인들이 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저 포스터 속의 여인들, 웃으며 회랑을 달려간다. 히틀러의 마지막 나날을 다룬 그의 영화 "몰로크"에서 히틀러의 애인 에바도 저렇게 날듯이 회랑을 걸었지. 소쿠로프는 역사를 무게없는 어떤 것으로 소묘한다. 무게 없는 중력 없는 진공의 집,  필름으로 지어진 집 속에서 공간화된다. 소쿠로프의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안을 배회하도록 초대받은 손님인 셈이다. 그리하여, 저 여인들이란 그 역사의 무게를 털어내어 버린 무게 없는 존재들.

2. 어떤 특정한 장소에 천착하며 그 장소에서 출발, 시간을 구조화하는 감독들이 있다. 기꺼이 선택한 그 장소의 무게를 덜어내고 부피를 지워버린 후  원근법 없는 한 장의 그림으로 그 장소를 탈색해내는 작업; 역사와 시간과 사건들을 무화시키는 작업. 나는 왕가위 영화들의 담배 연기가 꼭 그런 것이라고생각해왔다. 소쿠로프의 클로즈업과 회랑에서의 배회도 꼭 그러하다.  나는 어렵지 않게 이런 감독들을 경멸하곤 했다. 나는 원한이라도 맺힌 듯 이들을 경멸하고 비난하며, 비난거리를 찾기 위해 그들의 영화 뒤꽁무니를  계속 쫓아다니다가, 때로는 이들을 사랑하게 되기도 했다.
죽음을 앞 둔 레닌의 말년을 그린 소쿠로프의 또 다른 영화 " 황소"는 그의 다른 영화들보다 유머러스하다. 광기에 빠져드는 말년의 레닌, 혁명과 권력을 경험한 역사적인 인물의 마지막 나날, 그런데 마지막 나날의 레닌이 품은 광기 속에서는 숨결과 체온이 느껴진다. 히로히토, 레닌, 히틀러의 마지막 나날을 모두 영화화 한 소쿠로프의 작품들을 보며, 소쿠로프가 그린 죽음의 색깔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리라. 
                                                 소쿠로프 : 황소
by 키위 | 2007/05/11 05:23 | 오늘의 cinema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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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intcondtn at 2007/05/12 00:34
돌아가셨다니 저에겐 너무 갑작스럽네요..... -_-
영화제때 "Russian Ark"랑 "태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AR은 특이하구 멋져서 DVD도 가지고 있죠.... 지병으로 고생하셨던건가요...나름 충격이에요... _ _;;

근데 무섭게 바로위 사진을 올리시다니 ㄷㄷㄷ @_@;;
Commented by 키위 at 2007/05/12 23:46
아...무엇인가 오해가..소쿠로프는 건장하답니다. 다만 권력자들의 죽음을 다룬 작품 연작을 발표해왔다고 한 것이지요. 하하....멀쩡히 살아 있는 소쿠로프가 애매한 제 글 덕에 돌아가실 뻔..하하..이번 깐느에도 신작이 경쟁 부분에 올랐어요, 알렉산더라고. 저는 깐느에서 보게 될지 유월초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보게 될 지 모르겠네요. 지금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 폐막작으로 초대되었거든요. 아직 살아있는 소쿠로프씨도 깐느에 갔다가 파리에 와서 시네마테크에 왕림하신답니다.

"러시아 아치"는 정말 아름답죠. 애잔하면서도 도도하지요. 갤러리 문들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역사의 문이 열리고 닫히고 이 문들이 몽타쥬를 대신한다는 어느 프랑스 평론가의 말에 백프로 공감한답니다.
Commented by mintcondtn at 2007/05/13 13:08
소쿠로프 감독의 작품속에 죽음과 장면들에대한 노트군여 ㅇ<-<
아뇨~ 키위님 글은 전혀 혼돈이 있을수없는 좋은 글이었는데 제가 글을 제대로 다 읽지않고 죽음이란 단어에 바로 생각없이 반응했었답니다
이렇게 chock8릴데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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