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일하십니까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이전에도 프랑스 경제는 휘청거렸다. 앞의 포스팅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삶의 기술"을 천연덕스럽게 칭송했고, 오늘 아침 한국에서 다니러 오신 한 지인의 한탄에 맞장구를 치기도 했지만, 프랑스라고 별 수 있을까. 아니 프랑스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게 외치는 것은 "구매력 향상". 구매력을 향상시키려면, 사회당이 법제화한 주당 35시간 근무 원칙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들, 그러다 최근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것은 "일요일 근무 가능"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오래 전 배낭 여행 때, 저녁이면 가게들이 모조리 문을 닫아 난감했더랬다. 술집이나 레스토랑등이 밀집한 시내 중심가가 아니면 이 곳의 저녁은 어둡고 스산하다. (네온 없는 이 곳의 어두운 밤거리는 유학 첫날 내 마음을 너무나 을씨년스럽게 했다) 저녁에도 일찍 문을 닫고, 일요일에도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요즘은 파리 번화가를 중심으로 밤 열시며, 조금 더 늦게까지 영업하는 편의점 형태의 체인 몇이 문을 열기도 했다. 외지인이나 독신 중산층이 많은 파리에서는 이 가게들이 장사가 되는 편이다.

 왜 일요일에 가게 문을 닫을까? 법이 금지하고 있으니까. 법이 왜 금지할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고용 노동자가 없는 가게는 일요일에 영업을 할 수 있다.

프랑스 주재 한국 고위 관리 왈 "여기 애들은 게을러 터졌잖아. 일을 안 해 , 일을"
프랑스 주재 소위 좌파 유학생 "뭐 하나 살려고 해도,문을 안열어. 도대체 얘들은 언제 일하냐"
그래서 우파 사르코지 대통령은 "일 좀 더 하고, 돈 좀 더 벌고, 물건 좀 더 사서, 우리 경제를 살려보자"고 말했다.
사회당의 강력한 대권주자였으며, 중견 정치인이었다가 IMF총재로 자리를 옮긴 도미니까 스트라우스 칸 같은 좌파 (아이엠에프 총재 ㅎㅎ)도 일요일에 일하는 것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야하지 않냐고 말했다.

프랑스 사람들의 반응

여성 "나는 아침에 십오분, 저녁에 한 시간남짓 생후 육개월의 내 딸 얼굴을 본다. 일요일에도 일하면 나는 내 딸의 얼굴 볼 시간이 없어질거다"

또 다른 여성" 일요일에 가게들이 문을 연다고? 일요일에 백화점, 상가들을 돌아다니는 것에 시간을 꼭 써야 하는가. 미술관, 극장, 운동, 산책, 가족과 친구, 우리가 일요일에 쇼핑말고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남성" 나는 이혼 했다. 내 전처는 재혼했고. 전처와 함께 사는 아이들을 주말에 나는 접견할 수 있다. 주말에 일을 하게되면, 혹은 그 쪽 부모가 일을 하게되면, 나는 어떻게 내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물론, 일요일에 일하는 것이 선택이될거라지만, 고용주는 고용자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일하라고, 이게 눈에 보듯 뻔한 것 아닌가"

또 다른 여성 "일요일에 탁아소는 문을 닫는다.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피라고? "

일요일 근무 허용에 반대하는 이들이 주로 내거는 주제는 "사회적 관계의 붕괴"! 여기서 사회적 관계란 가족과 친구, 생산관계를 벗어나 우리가 삶에서 구축할 수 있는 모든 관계들일거다. 우리들의 일요일을 평온하게 내버려두라는 것이 반대자들의 외침.

가족을 알뜰 살뜰하게 보살피는 이 곳 한국의 부모들은 이 곳의 육아 시스템(생후 몇개월이면 공립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 맞벌이 부부 우선이며, 개인의 소득에 비례해서 비용이 청구된다. )이며 가족을 뒷전에 두고 일하러 나가는 여성들을 흔히 비인간적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한국의 육아 시스템이 여성,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 이 산업화의 시대에도) 고착되어 가고 있다면 (그래서 직장을 가뿐하게 그만 둘 수 있었던 수 많은 나의 고학력 친구들! ), 이 곳은 여성이 일하는 것이 자아의 사회적 가치에 중요한 척도라는 광범위한 믿음이 있고, 가족 관계 내지는 정서적인 친척, 친구 관계들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은 육아 휴아, 유급 휴가, 일요일 근무 금지 등의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방식이었던 게다.

나 역시 자본과 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외국인 체류증을 갱신하러 갔다가 서류 문제로 창구 직원과 다투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근처 옷 가게에서 금색 조끼를 사고 화를 가라앉힌 적도 있다. 소비만이 나의 불길을 가라앉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피식거렸다. 친구의 생일인데, 일요일에 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야한다. 우리가 예전처럼 친구의 선물을 손수 만들 여력을 없지 않나. 일요일에 쇼핑을 하는 것 역시, 오늘 날의 쇼핑은 인간 관계의 매트릭스이기도 하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일요일에 쇼핑말고도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을 보니, 그게 가능할 듯도 쉽고, 불가능할 듯도 싶다.
일요일에 쇼핑말고도 할 것은 얼마든지 많다. 팽창할 때로 팽창한 세계 경제, 세계의 소비 시장은 구매력 감소, 경기 하락에 휘청거릴테지만, 일요일에 쇼핑말고도, 소망 교회에 가는 것 말고도 할 일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 말고도. 
by 키위 | 2008/10/16 21:30 | 먼 곳에서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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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키위의 키위하기 at 2013/10/10 00:03

제목 : 일요일, 일요일, 일요일
저는 매일 매일 동네를, 서울 곳곳을 두리번거려요. 물론, 오랫만에 한국에 돌아와 사는 것이지만, 그래도 유학가기 전 삼십년 동안 서울에서 이십년을 살았는데, 서울이 변하기도 변했고, 내가 서울을 제대로 둘러보고, 바라보고,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오랫동안 파리를 둘러보고, 걷고, 살피고, 사랑한 후에야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여하튼, 매일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놀란 것 중 하나가 맥도날드 앞에 주차되어 있던 노란 오토바이. 세상에, 패스트푸......more

Commented by 갈림 at 2008/10/16 23:23
저도 십수년전 처음 유럽 갔을 때,
밤중에 그 휑한 도심을 보면서,
'왜 24시간 편의점'도 없는거야,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지금은 유럽에도 편의점이 꽤 생겼다고 하긴 하던데...

뭐랄까, 한국의 지금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쌩~ 해지는 느낌이네요. ㅜ.ㅜ;;
Commented by 키위 at 2008/10/18 07:17
갈림/몇년전에 스톡홀롬에 갔었는데, 그 곳에는 세븐 일레븐이 많이 있더라구요. 이 곳 생활 패턴에 잘 맞지 않아 편의점들이 없다기보다는, 법적 규제가 우선 많았던 듯 하고-도시 계획의 전통이 강한 곳이니까요-이런 도시의 틀짜기가 또 사람들의 생활 패텬을 다르게 바꾸는 것 같더군요. 한국은 에너지 절약에 근검 절약하라고 야간 영업이 안되었던가요?

일요일 근무-상사 눈치-추가 수당, 이런 사고 도식 이상에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가치들에 대한 사고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Commented by 키시야스 at 2008/12/29 11:30
안녕하세요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학생입니다. 좋은글 잘 보고 링크 등록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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