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티에리 주스가 데이빗 핀처 영화 음악에 대해 만든 짧은 클립에 보면 "당신처럼, 나처럼, 그는 참 멜랑꼴리한 사람일거다. 다만, 그는 그 점이 알려지길 원치 않을 뿐. "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쿨하고, 재기 넘치는 핀처의 영화는 그러니까,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직접 질문을 하는 영화거나, 서정적인 영화는 아니다. 핀처는 솜씨 좋은 할리우드의 대표 장인이지만, 할리우드 밖에서도 경탄을 이끌어 내는 재능이 넘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함부러 드러내는 일이 없다. 티에리 주스는 매끄한 그의 영화에서 어떤 빈틈을 찾아내고는 좋아한다. 유약한 피아노 음이 깔리는 흑백 영상, 텅 빈 사무실에 앉아 있는 백만장자의 영상.

나는 작가의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한다. 설렁탕에 왜 고기가 이렇게 적은지 분노하는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 했던 시인을 떠 올릴 수도 있다. 누구는 또,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당신에게 고작 이렇게 사소하고 달작지근한 이야기 밖에 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인들, 어떤 작가들은 어렵지않게 자신의 자의식을 질펀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어떤 '존재자'들은  자신들의 자의식, 그 자의식이 만들어낸 과잉 감정의 상태를 그리 쉽게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발가벗는 일이 두려워서 일까? 무력함을 고백하는 일 역시 부끄럽다. 특히, 무력함을 '아름답게' 고백하려 하지 않나, 부끄럽다. 부끄러움은 윤리적이기도 하다.

가끔 나는, 어쩌면 너무 자주, '작자-작가'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부끄러움, 버려야 할 부끄러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다. 어떻게 등단을 하나, 어떻게 책을 쓰나, 어떻게 책을 파나에 대한 질문이 득세하는 시대지만, 그 질문들 탓에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부끄러움이 없는 '작가-작자'들을 의심하다가, 또 부끄러움 없는 사람들의 확신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우리는 왜 부끄러울까. 나는 왜 가끔 그렇게 부끄러울까. 우리는 무엇이 부끄러울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심성이 곧고 고운, 그 곱고 고운 심성으로 기타를 치고 공부를 하였던, J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글로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나는 (나 자신에게) 민망해서 글을 쓸 수 없다" 고 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재능을 가진 J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 마음이 안타깝고 부러웠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만 부러웠던 나는, 깊고 깊은 J의 고백에 다시 나의 부러움들이 부끄러웠다. 평생을 버려도 다 못 버릴 나의 욕심들도 부끄럽더라.
by 키위 | 2013/11/23 14:47 | 스스로에게 하는 말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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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3/11/26 11: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키위 at 2013/11/27 21:30
네 오늘은 눈도 오구요.발이 차가워요. ^^
이번에 돌아가면 서울 파리 막 바뀌는 시간을 더 잘 살아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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