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정들려는 찰나 돌아와본 블로그
페이스북에는 제목이 없다. 친구 요청도 안 하고, 좋아요도 안누르고, 블로그보다 사람이 붐벼 보이는 페이스북에 들어가 지인들의 타임라인을 읽다가 가끔 발견하는 재밌는 이야기를 보고 키득거리거나 재미있는 옛날 동료의 글을 발견하고는, 아 이사람이 이렇게 웃기는 사람이었나 하기도 하고. 
언제나 나는 농담하기를 좋아하고, 시시덕거리기도 좋아하고, 그러다 격정토론, 차갑게 몰아붙이기도 하지만, 여튼, 사실, 순발력으로 주고 받는 농담 따먹기나 맞장구도 잘 치는 그런 사람이다. 친절하지 못한 것은 립서비스에 약하다는 것. 그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공감능력의 자연스러운 증가, 또 그로 인한 맞장구 능력의 상승 등등이 흐뭇하기도 한. 
그러나 직업상이든 아니든 글이란 걸 쓸때는 무슨 똥고집이 있어서, 꼭 두 세 가지 쯤은 해석이 가능한 애매한 문장 쓰기를 즐겨하고, 이리 저리 흘러가는 글쓰기를 의도적으로 조장하기도 하니, 내 또래 여전히 긴 글을 읽을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찾는 '차분하고 따스한, 생각이 너무 과도하지도 너무 빈하지도 않은 생활 수필' 유의 글은 쓰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 문제. 힐링이나 웰빙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고집. 글은 꼭 무거워야 할 것 같은. 

그래서, 페이스북에도 가끔 남들이 좋아하건 말건 문학적인 척 하는 상념, 깊이 있는 척 하는 잡념, 비판적인 척하는 성토, 그래도 쓰라린 패배감, 가끔 용기와 희망, 드물게 유머질 이런 컨셉의 글을 올려온지 이년. 요즘 진짜 젊은 친구들은 하나 둘 페이스북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더니, 페이스북에도 짧은 글 긴글 뒤섞이기 시작하더라. 무엇인가 페이스북에 진지한 글을 써도 맞아죽지 않을 분위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블로그화되어간다고도 할 수 있고. 
차이라면, 블로그보다 실시간 댓글들이 기발하고 순발력이 넘치는 경우가 많고 (뭐, 블록보다 훨씬 더 잡담 모드의 가벼움, 유쾌함 가미), 생활 유머가 대세, 적어도 삼십대와 사십대 유저들 사이에서. 
갑자기 페이스북에 정이 드는 다른 까닭은 페이스북으로 받아보는 신문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보다 공해가 적다는 이유다. 삐딱한 친구 몇을 따라다니니 내가 잘 모르는 대안 언론들과 블로그 글들 링크도 잘 따라갈 수 있고. 한국 너무 오래 떠나 있었나보다. 모르는 것 투성이. 그래서 따라가니 편한 것들 투성이.  
그래서 싸이월드도 트위터도 모르는 내가 이제는 페이스북 유저. 
그러니 어쩌면 페이스북은 망할 때가 된 것일까? ( 아니다, 나는 무려 요즘 디지털 문화에 대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하는 유사 전문가!) 

페이스북에는 아쉽게도 블로그와 달리 제목이 없다. 사이월드에도 제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모두들 상심과 분노에 빠져 있는 요즘, 그렇지만 나는 이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분노하고 비판하길 바라길 기워하는 요즘, 농담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다들 농담도 하며 애도할 때가 아닐까, 농담을 할 여력이 있는 이들이 조금 웃으며 울고 있는 사람들을 다독여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생각. 내 생각이 짧은 걸까. 

이 빈 블로그, 재개발될 아파트 단지 같은 이 빈 블로그에 어떻게 청소를 하고 꽃을 심을 수 있을까! 


by 키위 | 2014/04/26 01:20 | 타인에게 하는 말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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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4/04/29 04: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키위 at 2014/04/29 21:49
엇. 꽃 심은 보람이 있다.궁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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